내가 개발자가 되기까지

2019-03-20


초등학생 때 처음 메모장에 태그 복사, 붙여 넣기로 홈페이지를 만들던 게 내 생의 첫 코딩이었다. 중학교 때까지 몇 번의 리뉴얼과, 게시판 기능 등의 다양한 기능들을 덧붙여 이어나갔다. (미니홈피가 나오기 전까지)

아버지는 대학 때 독학으로 컴퓨터를 공부해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되셨는 데(그 당시는 컴퓨터 학과 자체가 없었다고), 어린 시절 큰 영향을 받지는 못했던 것 같다. 아마도 대부분의 시간을 일하는데 보내셨기 때문이었는지도.. 다만, 술을 드실 때마다 오빠와 나를 불러다 놓고 하시던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가 왜 대단한지.. 이야기는 머릿속에 세뇌? 되어 자연스레 그들이 친근하게 느껴지고 개발이 가깝게 느껴지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대학에서도 인터렉티브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고, 제너레이티브 건축 디자인에도 한창 푹 빠졌던 기억이 난다. 그리곤 아예 휴학을 하고 아두이노, 오픈 프레임웍스, vvvv 등을 활용한 인터렉티브 미디어 아트를 배워보기도 했다. 주변의 사회적 압박에 못 이겨 딴짓을 더 하고 싶었음에도 불구하고 전공 쪽으로 취업을 하게 되었고 그나마 컴퓨터를 신나게 다룰 수 있었기에(캐드, 맥스) 즐겁게 몇 년간 다닐 수 있었던 것 같다.

인테리어를 하면서 가장 인상 깊게 배운 것이 있다면 사용자 경험이었다. 마치 왈츠의 안무를 짜듯, 다양한 사용자들의 동선이 막힘이나 부딪힘 없이 춤을 추듯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인테리어뿐만 아니라 모든 서비스 디자인의 핵심임을 깨달았고 어설프지만 나의 디자인 가치로 삼았다. 그때 그동안 보이는 게 전부라고 알고 있던 틀에서 벗어나 사용자 중심의 경험적이고 기술적인 부분으로 향하게 했다. 그리고 규모가 큰 인테리어와 건축에서 벗어나, 좀 더 나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된 웹으로 모든 관심이 쏠리게 되었다.

그렇게 동료들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인테리어 세계를 벗어나 제대로 된 책 하나 없었지만 코드카데미를 스승 삼아 개발자로 향하는 긴 여정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개발자가 되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고, 그저 시작은 개발과 최대한 까깝게 연결된 분야에서 경험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고, 그것만이 내가 가진 옵션이라 생각했다. 감히 개발자가 될 수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으니까.. UX, UI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면서, 인터렉션에 대한 갈증이 극에 달했고, 당시 사내에서 아무도 하지 않던 프로토타입 툴을 써서 이것저것 만들어 보았지만, 새로운 툴에 대한 팀원들의 반대에 부딪히는 등 업무적으로 많은 한계를 느끼게 됐다. 그러던 중 코딩 부트캠프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개발자 과정에 뛰어들게 되었다.


4개월 과정이 끝나갈 무렵, 운이 좋게 바로 취업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개발자로 첫 발걸음을 내릴 수 있었다. 아쉽게도 회사 내부의 상황으로 인해 6개월 다니고 그만두게 되었지만(.. 에피소드가 너무나도 많지만 떠올리는 것 자체가 마음이 아프다), 거대한 서비스를 처음으로 맛보았고 내 코드가 처음 배포되던 날은 아직도 생생하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좋은 팀 워들과 전반적인 워크플로우에 대해 알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그렇게 첫회사를 겪고 나니 어떤 부분에서 기초가 부족한지 알 수 있었고 부트캠프 때부터 정신없이 달려온 것 같아 이런 상황을 수련의 기회로 삼아 온전히 코딩과 공부에 몰입했다. 중간에 Passive Income을 벌어보겠다고 온라인 리소스 판매업을 벌여보기도 했지만 $20 정도 벌고 끝이 났다. 직접 판매 사이트를 만들어보겠다고 몇 날 며칠 어떻게 구현할지 고민하고 만들고 부수고 반복하면서 결과적으로는 판매 플랫폼을 사용했지만, 정말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역시 튜토리얼보다 더 확실한 교육은 직접 일을 벌여보는 게 아닌가 싶다. 동업자 친구와 의견 충돌도 겪어보고, 마케팅에 대해서도 배워야 했고, 그때의 경험으로 인해 모든 사업을 하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었다. 진짜.


내가 몇 번이고 읽은 책중의 하나인 파울로 코엘류의 연금술사에서 주인공은 피라미드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한다. 책 속에서 피라미드는 단지 어떤 장소가 아닌,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우리가 가야 할 곳 - 꿈, 목표로 그려진다. 그리고 목표로 가는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마크툽’ - 이미 쓰인 일 -이라고 말한다. 시련과 실패라고 느껴지는 일조차도 이미 우리를 목표로 안내하고 있음을 책에서는 반복해서 강조한다.

연금술사를 처음 읽던 그 날부터, 삶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성장하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연습을 했다. 어떻게 보면 나는 사서 고생하는 편이기도 하다. 수많은 딴짓들을 제외한다면 이미 한 가지에 특출한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다. 비록 나는 어떤 한 가지 스킬에 전문성을 떨어질지언정, 내 삶에 만큼은 특출하다고 자신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자로서의 길을 계속 걷고 싶은 이유는, 내가 인터넷으로 인해, 기술로 인해 받은 수많은 위로와 도움 와 응원을 또 다른 이들을 위해 돌려주고 싶고, 내가 받았던 기술의 긍정적인 면들이 사라지길 않고 더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 때문도 있다. 또, 난 팟캐스트나 책을 통해 정석이 아닌 다양한 방법으로 삶을 살아온 이들의 경험담을 통해 다르게 살아도 괜찮다는 걸 배웠고, 힘을 많이 얻은 것처럼 내 삶도 또 하나의 예시로써 누군가에게 이런저런 삶도 다 괜찮다는 걸 느낄 수 있게 해준다면 충분한거 같다.


그냥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단순하게 DHH-David Heinemeier Hansson처럼 시간이 흘러도 영혼을 잃지 않고, 재미를 잃지 않는 인간적인 개발자가 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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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HH의 정수를 느끼고 싶다면 Tim Ferriss-Show의 4시간의 가까운 팟캐스트를 들어보기를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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