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더무브

올리버 색스

★★★★★


생각보다 두꺼운 책이었는데, 한장 한장 넘기기가 아쉬울 정도로 아름답게 쓰여진 책이었다. 어떤장은 너무 슬퍼서 같이 눈물이 났다. 많은 역경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더욱 감동적이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받은 교육과 자신이 속한 사회의 문화, 자신이 사는 시대의 산물이다.

이 일로 우울해지고 친구들이 모두 대학을 떠나 외톨이가 된 나는 고요하나 알 수 없는 불안한 절망 속으로 가라앉았다. 몸을 움직여 운동하는 것 말고는 어디에서도 위안을 얻을 수 없어 저녁마다 나가서 아이시스 강을 따라 난 강변길을 달렸다. 한두 시간 달리고 나서는 물속에 뛰어들어 수영하고는 젖은 채로 약간의 냉기를 느끼며 다시 달려서 크라이스트처치 맞은편 나의 누추한 셋방으로 돌아왔다.차게 식은 저녁을 허겁지겁 먹고는 밤이 깊도록 글을 썼다. 미친듯이 써내려간 이 시기의 글들은 살아남기 위한 처방 조금, 살아가야 할 이유 조금 따위를 버무린 형편없는 잡탕 철학이었다.

옥스퍼드대학교 의예과에서 한 해부학과 생리학 공부는 실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환자들을 만나고, 환자들 이야기를 경청하고, 환자의 경험과 곤경 속으로 들어가려고(또는 최소한 상상하려고) 애쓰고, 환자들을 염려하고, 환자들을 책임지는, 이 모든 것을 다 처음부터 배워야 했다. 환자들은 진짜 문제를 아주 고통스럽게 겪는(그리고 종종 중대한 기로에 선) 저마다 절절한 사정을 지닌 진짜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의료 행위는 단순히 진단과 치료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며, 훨씬 더 중대한 문제에 직면하기도 한다. 삶의 질 문제를 물어야 하는 상황이 있고, 심지어는 생명을 이어가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인가를 물어야 하는 상황도 있다.

이 만남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얼마나 또 만나고 싶은지는 굳이 말로 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외과 인턴을 위해 6개월간 버밍엄으로 가야 했지만 이것은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토요일마다 모터사이클 타고 런던으로 달려와 부모님과 집에서 하룻밤 보내면 되었는데, 더 일찍 도착해 먼저 버드와 오후를 보낸 뒤 다음 날 아침에 함께 라이딩을 갔다. 나는 쨍한 일요일 아침의 라이딩을 사랑했으며, 내 모터사이클은 놔두고 버드의 뒷자리에 앉아 가는 것은 더더욱 좋았다.그렇게 꼭 붙어 달릴 때면 우리가 무슨 짐승 가죽이 된 기분이었다. ….그가 이 일에 크게 개의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는 모터사이클 벗이고 잠자리 벗일 뿐 그 이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서로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말 한마디 해본 적 없었으니까. 그런데 버드가 보내온 답장은 간절하고 가슴 아팠다. 마음이 쓸쓸하다면서, 내 편지를 받고 서러워 울었다고 했다. 그의 답장을 받고 마음이 무거웠다. 버드가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나는 이미 그에게 상처를 준 것이다.

우리는 두 달 동안 ‘일요일에 아프려는 욕구’로 추정되는 문제를 탐구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그의 편두통이 점점 줄어들더니 끝에 가서는 거의 사라졌다. 내게 이 사례는 무의식적 동기가 때로는 생리적 경향과 동맹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증이자 어떤 사람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패턴과 맥락, 그 인생의 유기적 질서에서 하나의 질환 또는 그 치료법만 따로 떼어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뵤여주는 예증이었다.

한번은 신경학과에서 시험을 쳐서 학생들 점수를 매겨달라고 했다. 나는 평가서를 제출하면서 전원 A를 줬다. 학과장이 분개해서 물었다. “어떻게 이 학생들 전부 A를 받을 수 있습니까? 이게 무슨 애들 장난인 줄 알아요?” 나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장난이 아니라고. 개별 학생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그 학생의 뛰어난 점이 보였을 뿐이고, 내가 모두에게 A를 준 것은 무슨 얼치기 평등주의를 실현한 것이 아니라 각 학생고유의 두드러지는 점에 점수를 준 것이라고. 나는 어떤 학생이건 점수나 시험 성적으로 단정 지을 수 없다고 느꼈다. 어떤 환자든 그렇게 할 수 없듯이. 그 학생의 다양한 면면을 접해보지 않은 내가 어떻게 평가를 내릴 수 있겠는가? 그들의 공감 능력과 배려심, 책임감과 판단력 같은 점수를 매길 수 없는 자질은 또 무엇으로 평가한단 말인가?

나는 이 어린 환자들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이들에게 깊이 공감했고, 한 사람의 의사로서 이들이 지닌 긍정적인 잠재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했다.또 틈 날 때마다 이들과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범주의 놀이를 함께 하곤 했다. 달력과 수 방면에 천재인 정신지체 쌍둥이 존과 마이클하고는 인수와 소수 찾기 놀이를 했고, 시각적 재능이 뛰어난 자폐증 소년 호세와는 그림 그리기와 시각예술 영역 놀이를 했다. 그런가 하면 나이절에게는 음악이 아주 중요했다. 23병동으로 내 고물 피아노를 옮겨놓았다. 내가 연주를 할 때면 나이절과 다른 어린 환자들이 피아노 주위로 모여들었다. 나이절은 내가 연주하는 곡이 마음에 들 때면 요상하면서 정교한 춤을 선보이곤 했다.

두 팔에 의지해 쓸모없어진 다리를 끌고 내려가는 동안 여러 단계로 심경 변화를 겪었다. 살면서 일어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훑고 지나갔다. 대부분이 좋은 기억이었다. 고마웠던 일들, 여름날 오후의 기억들, 사랑받았던 일들, 선물 받았던 일들, 그리고 나도 무언가를 되돌려 줄 수 있어서 감사했던 기억들. 또 내가 좋은 책 한권, 훌륭한 책 한 권을 썼다는 생각도 스쳐지나갔다. 떠오르는 모든 생각이 과거시제로 쓰이고 있었다. “삶의 마지막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이 고마운 생각이게 하라”는 위스턴 휴 오든의 시구가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번 다리 사고는 내게 사람의 몸과 몸을 둘러싼 공간이 뇌 안에 어떻게 구획되어 있는지, 사람의 사지 하나가 손상되었을 때, 특히 그 손상으로 운동 능력과 신체의 자유를 상실하는 경우에 이 중추적 지도가 어떻게 심각하게 교란될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었다. 사고가 아니었다면 그 사실을 몸으로 배우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번 사고를 통해 또한 내가 연약한 존재, 죽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몸으로 느꼈다.

물론 최고의 즐거움은 잔잔한 호수에서 즐기는 수영이었다. 이따금 어부가 노 젓는 거룻배가 슬렁슬렁 지날 뿐 무방비 상태의 헤엄꾼을 위협하는 동력선이나 수상스키 같은 것은 없었다. 레이크제퍼슨호텔은 전성기를 지난 곳이어서 장식 정교한 수영 플랫폼과 뗏목, 대형 천막 따위가 다 방치된 채 조용히 썩어가고 있었다. 속박 없이 근심걱정 하나 없이 헤엄치다 보면 몸은 편안해지고 머리는 빠릿빠릿하게 돌아갔다. 생각이 떠오르고, 이미지가 떠오르고, 때로는 단락 하나가 통째로 머릿속에서 헤엄치기 시작하는 바람에 수시로 물 밖으로 튀어나와 호수 옆 야외 탁자에 놔둔 메모지에다가 쏟아 붓곤 했다. 얼마나 마음이 다급했는지 가끔은 제대로 말리지 못한 물기에 메모장이 흠벅 젖기도 했다.

1960년대 사람들을 만나려고 게이바에 다닐 때는 이 기질 탓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속만 태우면서 구석에 처박혀 있다가 한 시간쯤 지나 혼자 빠져나오면 서글프면서도 한편으로는 왠지 홀가분했다. 하지만 파티든 어디서든, 나와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순식간에 활발한 대화에 빠져들곤 한다.

나는 길거리에서 사람들하고 말해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런데 몇 해전 개기월식이 있던 날 20배율 소형 망원경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분주히 걸어가는 사람들은 바로 머리 위 천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사람들을 멈춰 세우고 말했다. “보세요! 달이 어떻게 됐는지 봐요!” 그러고는 내 망원경을 사람들 손에 들려줬다. 사람들은 낯선 사람이 접근하니 처음에는 놀라서 물러섰다. 하지만 내가 순수하게 열광하는 것을 알고 호기심을 보이면서 망원경을 눈에 갖다 대고는 “와” 감탄하고 망원경을 돌려줬다. 그러고는 “저런 걸 보게 해주다니, 고맙습니다”하거나 “아이고, 보여줘서 고마워요”라며 인사했다.

우리 건물 반대편 주차장을 지나는데 한 여성이 주차 안내원과 심하게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싸움은 잠시 멈추고 달을 보세요!” 두 사람은 깜짝 놀라 멈추고는 사이좋게 망원경을 주고받으며 월식을 관찰했다. 그러고는 망원경을 돌려주며 고맙다고 인사하고는 곧바로 다시 격력한 말다툼을 시작했다.

나는 그 글에서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인생 이야기, 내면의 이야기를 지니고 있으며 그 이야기가 곧 자신의 정체성이기도 하다고 썼다.

톰은 나중에 한 자전적 에세이에서 이 문제를 숙고했다.

 글쓰기는 분명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하나의 본질적인 방식이었다. 하지만 나는 파생적 글쓰기를 꽤나 즐기는 시인이다. 내가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이 누가 되었건 배우고 싶어한다. 내가 다른 곳에서 읽은 것을 빈번히 빌려 쓰는 이유는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독서는 나의 총제적 경험의 일부이며 내가 쓰는 시 대부분은 내 경험을 토대로 한 것이다 나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빌려오는 것을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나는 나만의 시적 개성을 키우는 일을 시급한 과제로 여기지 않으며, 예술은 개성으로부터의 도피하는 엘리엇의 멋진 말에 환호를 보낸다.

톰이 이십대에 쓴 온 더 무브에 이런 행이 나온다.

 아무리 나빠도 우리는 움직인다. 아무리 좋아도
 절대에 가닿지 못하는, 안식할 곳 없는 우리,
 언제나 멈춰 있지 않아, 더 가까워진다.

배우들이 아무리 몰입하여 똑같이 그려낸들 환자의 역할을 연기하는 것뿐이다. 반면 릴리언은 나머지 인생에서도 그 인물로 살 수밖에 없다. 배우들은 자신의 역에서 빠져나올 수 있지만 릴리언은 그러지 못한다. 릴리언이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밥이 휠체어를 타고 들어와 레너드 L.의 얼어붙은 근육긴장증 자세를 취하자 릴리언도 꼼짝 않고 경계의 눈빛으로 꼬치꼬치 뜯어봤다. 얼어붙은 연기를 하는 밥은 바로 코앞에서 실제로 얼어붙은 릴리언을 어떻게 생각할까? 그리고 실제로 얼어붙은 릴리언은 그런 연기를 하는 밥을 어떻게 생각할가? 릴리언이 내게 한쪽 눈을 찡긋 하면서 보일락 말락 양쪽 엄지 손가락을 들어 올렸는데, 이런 뜻이었다. “이 사람 됐어요. 제대로 하는군요! 이 사람, 이게 어떤 건지 정말로 알고 있어요.”

사람은 발군의 이야기 본능을 타고난 동물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를 이야기의 무대로 설정합니다. 그렇다면,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야기의 의도를 짐작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혼란스럽기만한 주위 환경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수많은 역사 속 영웅 이야기를 읽었지만, 모두가 타고나는 가장 기본적인 능력을 박탈당한 불운한 사람들이 이를 보완할 방도를 찾아 실행하기 위해 안간힘 쓰는 이야기보다 더 숭고한 주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